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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 107(2018)년 1월 9일 《통일의 메아리》
조상의 땅을 지켜 ( 8 )

장편사화소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리성환 작 《조상의 땅을 지켜》,오늘은 여덟번째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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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진은 따라서는 아들 은천을 밀막으며 초당을 지키고앉아 학업에나 열중하라고 당부했다.

서희도 은천이 귀양지로 가는것을 반대했다. 때가 되면 임금의 오해는 풀릴것이라며.…

은천은 할수없이 주저앉았다. 송죽이도 떨어졌다. 은천의 뒤바라지를 해야 했던것이다.

초당은 졸지에 서리맞은 꼴이 되였다.

은천은 초당안은 답답하다며 쩍하면 뒤산으로 올라가 책을 읽었다.

아버지가 귀양가있는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기가 일쑤였다.

(서희어른께선 언제 돌아오시려나.… 그 어른이 계시면 은천오빠의 외로움을 조금은 덜련만…)

송죽은 오래비 은천이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있는 서희가 돌아오기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는가를 잘 알고있다.

서희는 금년(972년) 초봄에 송나라 수도 개봉으로 떠나갔다.

송나라와의 반거란동맹체결이 기본목적이였다.

송나라는 후주의 군사귀족 조광윤이 960년에 왕이 죽자 어린 세자를 왕위에 올려놓았다가 3년을 못 넘기고 페위시킨 뒤 제가 왕이 되여 송이라 나라이름을 고쳐 정한 뒤 황하이남의 형남, 촉, 남한, 남당, 오월 등 크고작은 소국들을 일면 강압, 일면 회유의 방법으로 함락귀속시키면서 10년사이에 제법 거란과 맞서 기염을 토하며 기세를 올려가고있었다.

10여년전에 거란의 공격을 가까스로 멈춰세우고(거란에 만리장성부근의 숱한 땅을 내주고 교역형식의 조공까지 곁들이여 바칠것을 약조한 대신으로 치욕적인 정화를 하였었다.) 힘이 진해 헐떡이는 후주조정은 사실상 자기 명을 다한 상태였었다. 거란과의 싸움을 총괄하는 과정에 군권을 틀어쥐게 된 조광윤은 3년후인 963년에 왕위에 올라 갱신의 새바람을 일으키며 10년어간에 중국을 통일하는 공을 세웠다.

땅은 얼마간 양보하고 그까짓 조공따위는 약조했다 하더라도 그래도 거란의 남하를 막고 덩지 큰 한족국가의 체면을 세워주고 존재를 유지하게 한 그 공을 어찌 작다고 할것이며 10년만에 진나라때보다 남북동서로 령토를 더 넓혀서 더 큰 통일국가를 세워놓았으니 그 공 또한 어찌 칭찬하지 않을수 있으랴.

송태조 조광윤의 명성이 하늘 높은줄 모르고 솟구쳐오르자 거란왕은 심사가 뒤틀려 환장할 지경이 되였다. 그사이 한편으론 뒤통수를 쑤시는 돌궐과 싸우느라, 다른 편으론 집안끼리 벌려놓은 편싸움을 결속하느라 후주공략에서 약간 거두어들였던 땅이니 재물이니 하는것들을 제대로 소화시키지도 못한채 피칠갑을 해가지고 허우적거리다가 겨우 수습한 거란으로서는 료태조때의 유지인 중원공략웅지를 지금 당장 다시 펼칠수는 도저히 없는 상태였다.

송나라가 부국강병의 북소리를 울리며 위세를 돋구는것을 당장은 눈뜨고 보고만 있어야 하는 거란의 심사가 오죽하랴. 하지만 원체 질기기가 락타 발뒤꿈치 심줄같은 이 족속들이 가만있을리 만무였다. 그속에서도 감히 돼지엉치에 창질하듯 때없이 송나라지경을 기습하기가 일쑤여서 치세치민에 열중하는 송을 노상 괴롭히고있었다.

화김에 발차기라고 무뢰배 거란것들은 돌궐을 침네 하고 고려의 압록강대안까지 말발굽을 울리군 하여 고려조정의 신경을 곧잘 건드리군 하였다.

구름이 자주 끼면 비가 오는 법이라고 고려변방에 대한 거란군의 잦은 출몰은 십중팔구 전면공격에로 이어질 가능성이 풍부했다.

거란에 대처하기 위해 힘을 모아가고있는 사정은 고려나 송이나 같은 처지였다. 이로 해서 고려와 송은 반거란동맹의 형성이 절실하게 나선다는 견해에 도달했다.

이러한 견해를 먼저 표명해온것은 송나라였다. 송나라조정의 비밀접촉서신이 산동해안의 고려방상인들의 래왕행렬에 묻히여 전해져왔다.

송나라와의 접촉문제를 놓고 조정에서는 론의가 분분했다.

접촉에 응하느냐 마느냐, 접촉에 응하는 경우 송의 사신을 오게 하느냐 고려의 사신이 가게 하느냐.…

하지만 론의는 이내 결속되였다.

태조때 후진의 사신교환에 쾌히 응하였던 전례를 따르는것이 여러모로 보아 좋다는것이였고 더우기 송나라실상을 직접 료해할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는데서 견해가 일치했다.

고려사신이 찾아가는것이 덩지 큰 송나라에 스스로 제후국처럼 보일수 있으니 격이 떨어지는 처사라 반대하는 대신들도 있었으나 그것은 즉시 부정되였다. 그것은 송나라조정의 비밀서신에 《야만족 거란이 감히 대료제국을 운운하며 중원과 해동, 두 제국의 비위를 건드리고 령토를 탐하는양을 묵과해둘수 없으므로…》라는 문구에서 알수 있듯이 송은 고려는 같은 제국으로 인정하나 거란은 제국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 명기되여있으므로 부디 제후국이나 속국으로 대하리라는 선입견은 가질 필요가 없다는데서였다.

만약경우 그런 틈사리가 조금이라도 보일 경우에는 즉각 반박하고 돌아서면 될것이였다.

사실을 말하면 임금은 스물두해전(950년) 즉위하면서 년호를 광덕으로 정하였고 이후에 준풍이라 고쳐불러왔지만 송은 이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있었다.

론의의 초점은 반거란동맹의 약조문제중에 송이 지금 당장에 군사를 일으켜 거란을 익측으로 협공해달라는 실제적인 군사행동안이 제기되는 경우 이를 어떻게 처리할것이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여 시간을 조금 끌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송이 먼저 공격할 준비가 완료되여있고 공격시간표가 세워져있는가를 확정한 뒤에 그리고 공격하여 능히 거란을 밀어내고 령토를 수복할수 있는지를 타산해본 뒤에 내려야 할것이므로 현지에 가는 사신의 판단과 처리에 맡기기로 했다.

마지막에 사신단의 수석을 누구로 하느냐 하는 론의에서 다시금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으나 그 문제도 이내 결속되였다.

임금이 내의시랑 서희를 추천한것이였다.

원로대신들은 별다른 의견을 제기하지 않았다. 최근에 와서 임금이 중요문제를 론의할 때 서희를 비롯한 젊은 관료들을 즐겨 불러들이는것을 이미 싫도록 목격한바도 있거니와 아닌 말로 현재 고려조정에 서희만큼 능수능란하게 림기웅변으로 대처할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었기때문이였다.

원로대신들자체가 신진관료의 출현을 적극 바라고 밀어주고있는데도 있지만 신진세력으로 조정을 꾸리려는 임금의 결심은 이미 즉위 초기부터 내려져있었던것이다.

임금은 즉위하여 8년만에 과거를 보는 제도를 내오도록 하여 신진관료선발을 공명정대하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하도록 하였고 과거시험제도를 실시하여 두번째 해에 제일 첫자리로 당선된 서희에게 대담하게 시랑의 관직을 주었던것이다.

기실 이 시기에 임금은 건국공신들을 비롯한 수구관료들을 은근히 밀어버리고 신진관료들을 적극 내세워 조정의 기강을 참신하게 해가고있었다. 몇해전 최지몽의 실언을 즉석에서 꼬집어 면박을 준것도 실은 개국공신원로들에게 너희들 없이도 내절로 정사를 본다는것을 알게 하자는데 진목적이 있었다. 임금은 주대가 있는 사람이였다.

서희는 서둘러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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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장편사화소설《조상의 땅을 지켜》를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여덟번째시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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