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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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8월 16일 《통일의 메아리》
평양에서 울고간 시인

주체조선의 심장이며 선군문화의 중심지인 평양은 유구한 력사와 더불어 아름다운 산천을 자랑하며 위인의 손길아래 더욱 밝은 빛을 뿌리고있다.

평양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수많은 력사일화중에서 일부를 전한다.

김황원(1045-1117)은 고려때의 이름난 시인이였다.

그는 우리 나라 명승지를 유람하면서 아름다운 자연풍경에 대한 시를 많이 남기였다.

어느해 여름 평양의 아름다운 산천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모란봉 부벽루에 오른 그는 청류벽과 평양성을 감돌아흐르는 맑고 푸른 대동강물, 연한 안개속에 가없이 펼쳐진 동대원을 바라보다가 절경에 심취되여 한동안 넋을 잃고 서있기만 하였다.

《아, 세상에 이런 절경도 있단 말인가!》

그는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이름난 시인이 평양에 왔다는 소문을 들은 평양의 관리들과 선비들이 김황원을 만나자고 부벽루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시인에게 평양의 절경을 노래한 명문장을 하나 남겨달라고 청하였다.

김황원은 부벽루의 기둥과 천정에 어지럽게 걸려있는 글들을 흝어보다가 얼굴을 찡그리며 개탄하였다.

그것들은 어느 하나도 평양풍경을 방불하게 그리지 못하였기때문이였다.

김황원은 찾아온 관리들과 선비들에게 자기가 평양의 절경에 대한 시를 남길터이니 저런 어지러운 글들은 모조리 떼버리라고 하였다.

이윽토록 부벽루기둥에 한팔로 의지하고 시상을 고르던 시인은 마침내 붓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드디여 그는 여러 사람들이 빽빽이 둘러서서 내려다보는 가운데 붓을 쥐고 흔들었다.

 

장성일면 용용수

대야동두 점점산

(긴성 한면에 강물이 넘실넘실

큰 들 동쪽엔 산들이 우뚝우뚝)

 

이렇게 단숨에 쓰고난 시인은 더 붓을 놀리지 못하였다. 그는 붓을 쥔채로 부벽루아래를 한참 내려보다 다시 비단폭우에 쓰려 했으나 붓은 더욱 굳어져만 갔다. 부벽루우에서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대동강의 맑고 푸른 물을 보느라면 마치 바다우에 솟구쳐올라온 《룡궁》의 정자에 서있는듯싶었고 멀리 안개에 묻힌 동대원벌을 바라보느라면 구름우에 떠있는 《천궁》의 란간에 서있는듯 하였다. 보면 볼수록 새로와지는 풍치를 몇련의 시구로는 도저히 옮길수 없었던것이다.

김황원이 두 구의 시를 써놓고 붓방아를 찧기 시작한지도 오래였고 시간이 갈수록 시인의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만이 비단폭을 적시게 되자 모여섰던 사람들이 한둘씩 조용히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해가 저물고 황혼이 비끼는 부벽루에 홀로 앉아있게 된 시인은 그만 붓을 꺾어버리고 마루바닥을 치며 통곡하였다.

《아, 평양의 절경을 그려내기에는 내 재능이 모자라누나!》

시인은 이렇게 한탄하며 밤늦게까지 울다가 그곳을 떠나갔다.

그후 평양사람들은 그가 쓰다 만 두 구의 시를 부벽루의 기둥에 걸어 전해오다가 오늘은 련광정의 기둥에다 옮겨놓았다.

그것은 쓰다 만 두 구의 시가 잘되여서만이 아니라 이름난 시인도 시어가 모자라 못다 노래한 평양, 평양의 아름다움을 길이길이 자랑하기 위한 념원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