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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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 《통일의 메아리》방송은 단파 5 905KHz, 3 970KHz, 3 945KHz와 초단파 97.8MHz, 97 MHz, 89.4 MHz로 보내드리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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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10월 20일 《통일의 메아리》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최치원이 외국류학을 떠나게 되자 그의 아버지는 이름도 알려지지 못한 자기네 집안에서 아들이 그런데 뽑힌것을 여간만 기뻐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근심도 없지 않았다. 당시 신라에서는 김춘추, 김유신 등이 당나라 무력을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무너뜨린후 고질적으로 우심해진 당나라에 대한 사대주의가 조정을 흐리게 하고있었다. 어린 아들이 이런 때 당나라에 류학을 가게 됐으니 그릇된 사상에 사로잡혀 몹쓸 인간이 되여 돌아오지 않을가 하는것이 큰 근심이였다.

그뿐이 아니였다. 아들을 부모조상과 가정을 잊지 않게 하려고 일찍 장가를 보냈는데 그가 외국에 가서 이국정서에 말려들어 그곳의 녀자들과 사귀면서 학업을 게을리하지 않겠는가 하는것도 걱정되였다.

아들에게는 엄한 아버지였던 그는 먼길 떠나는 최치원에게 살뜰한 말을 할수 없었다.

그래서  하직인사를 하는 어린 아들에게 친절하면서도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10년을 기한하자. 이 사이에 네가 그 나라의 과거시험에서 단연 우뚝 솟은 급제자가 되여야 한다. 만약 급제를 못하는 날이면 너는 내 아들이라고 하지 말아라.》

여기서 말을 끊었던 최치원의 아버지는 한마디 더 할 생각이 들었다.

《나도…나도》하고 갑자르다가 《그 지경이 되는 자식이 없다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조상의 신주앞에도 그렇게 여쭈겠다.》

꿇어앉았던 최치원은 그 말이 가슴에 꽉 달라붙었다.

《뼈에 새겨 깊이 명심하겠습니다.》

아버지는 칼로 베듯이 말을 잘라 령을 내렸다.

《가거라, 부지런히 공부하거라.》

그들 아버지와 아들은 이렇게 헤여졌다.

최치원은 류학기간 아버지의 이 말을 순간도 잊지 않고 공부에 열중하였다. 그리하여 당나라 문인들속에서 동방의 큰 문인재사로 높은 존경과 찬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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