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1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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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10월 14일 《통일의 메아리》
《조선치마저고리에 깃든 녀사의 숭고한 념원을 새겨봅니다》(2)

겨레의 목소리 들어보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는 전시간에 이어 주체101(2012)년 12월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였던 류미영선생이 쓴 글 《조선치마저고리에 깃든 녀사의 숭고한 념원을 새겨봅니다》를 계속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두번째시간입니다.

 

김정숙녀사께서 도천리와 신파에서 지하공작을 하시던 그 나날에 김일성주석님의 령도밑에 국내진공작전을 성과적으로 진행한 조선인민혁명군을 《소멸》하겠다고 왜놈들이 대병력으로 간삼봉에 밀려들 때 그에 대한 정보를 제때에 혁명군사령부에 보내시여 김일성주석님의 안녕을 믿음직하게 수호하신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있습니다.

녀사께서 김일성주석님의 신변안전을 위하여 사선을 넘으시며 자신의 한몸을 서슴없이 내대신 이야기들은 수없이 많지만 저는 여기서 제가 들은 한가지 사실만을 더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해방직후 민주개혁을 위한 사업이 한창이던 주체35(1946)년 2월 중순 어느날 김일성주석님께서 저택에서 밤이 깊도록 선전부문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방송사업과 관련한 과업들을 가르쳐주고계실 때였습니다.

녀사께서도 일군들에게 다과를 권하시며 그 자리에 함께 계시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가까운 곳에서 자지러진 총소리가 울리더니 이어 전등이 꺼지고 방안은 먹물을 뿌린듯 캄캄해졌습니다. 불의의 정황에 일군들이 긴장해져서 어쩔바를 몰라하는데 김일성주석님께서는 태연자약하신 어조로 놀랄것 없다고, 몇놈의 쥐새끼들이 쏠라닥거리는 모양인데 우리 좀 쉬고 이야기를 계속하자고 하시며 출입문쪽으로 향하시였습니다.

바로 이때 어느새 싸창을 틀어쥐고 바람처럼 달려가 출입문을 막아서는분이 계시였으니 그분은 다름아닌 김정숙녀사이시였습니다.

일없다고, 무슨 일인지 나가서 알아나보자고 하시며 그냥 문밖으로 나가려 하시는 김일성주석님을 녀사께서는 온몸으로 막아나서시며 《절대로 안됩니다. 나가실수 없습니다. 이것은 경위대의 요구입니다.》라고 드팀없는 강경한 어조로 말씀하시였습니다.

그 순간의 녀사의 모습은 방금전까지 다과를 권하시던 부드럽고 상냥하신 모습이 아니라 싸창을 틀어쥐시고 서리발시선으로 어둠속을 헤가르는 백두의 녀장군, 온몸이 그대로 김일성주석님의 안녕을 지켜선 성새의 모습이였습니다.

지금도 저는 치마저고리차림으로 김일성주석님을 지켜서시였던 녀사의 그 불멸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며 자문해봅니다.

수수천년 이어진 봉건적질곡과 자본의 억압속에서 지지리도 천대와 멸시만을 당해온 조선녀성들의 비참한 모습이런듯 연약하고 가냘프게만 느껴지던 조선치마저고리가 그처럼 민족의 령수를 결사수호하는 굳건한 방패로, 웅건한 성새의 모습으로 세상에 자기 모습을 드러낸적이 과연 있었는가고 말입니다.

참으로 김정숙녀사는 우리 민족이 대대로 사랑하며 물려내려오는 치마저고리에도 민족성원으로서의 값높은 사명감은 무엇보다 민족의 령수를 결사옹위하는 길에서 빛난다는 진리를 새롭게 새겨주신 민족의 스승, 민족의 제일가는 귀감이십니다.

김정숙녀사께서 입으셨던 조선치마저고리, 그것은 녀사께서 한생토록 가슴속에 간직하시였던 김일성주석님에 대한 헌신적인 충정인 동시에 내 나라, 내 민족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였습니다.

김정숙녀사에게 있어서 조선치마저고리는 단순한 옷이기 전에 김일성주석님의 해발을 안고 인민들속에 들어가실수 있는 위력한 통행증이였고 그들의 마음을 열수 있는 말없는 언어였습니다.

김정숙녀사께서 해방후 조국인민들과 첫인사를 나누실 때에도, 온 나라 방방곡곡의 수많은 로동자, 농민들앞에서 김일성주석님의 새 조국건설로선을 하나하나 깨우쳐주실 때에도 밝은 웃음 지으신 그이를 정결하게 받쳐드린것은 다름아닌 조선옷차림이였습니다.

그때는 해방바람, 봉건청산바람이 곳곳을 휩쓰는 속에 한다하는 녀류인사들마다 자기의 존재를 류행을 본딴 형형색색의 옷차림에 담아 뽐내던 시절이였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좋은 옷이나 류행복 몇벌쯤은 입으실수도 있었으련만 자신을 장군님의 뜻을 받드는 평범한 전사의 한사람이라고 하시며 그런 화려한 옷차림과는 될수록 거리를 멀리하신 김정숙녀사이시였습니다.

민족이 낳은 희세의 녀걸이 그리도 소박하고 너무도 친근하기에 인민들은 더더욱 경모하였고 한순간에 그이를 자기들과 조금도 격의없는 친근한 이웃으로, 스스럼없는 벗으로, 가까운 혈육으로 받아들였던것입니다.

조국해방의 벅찬 감동이 흐르던 그 나날 김정숙어머님으로부터 받아안은 강렬한 인상에 대하여 쓴 글 한대목이 저의 가슴을 울립니다.

《팽팽한 긴장과 기대가 한데 모이는 가운데 존경하는 녀사께서는 검소한 조선옷차림을 하시고 침착하게 연단으로 걸어나오시였습니다. 그러자 장내에는 금시 떠나갈듯 한 요란한 박수갈채가 터져올랐습니다. 전설적녀장군의 모습은 너무도 소탈하였고 그래서 일시에 마음이 끌렸던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녀사께서는 가시는 곳마다에 자신의 소박한 모습을 새기시였습니다.

력사적인 첫 선거의 날 수수한 무명치마저고리를 입으시고 투표에 참가하시던 숭고한 모습, 우리 군대의 첫 열병식장과 평양학원개원식장에 눈물을 흘리시며 서계시는 치마저고리차림의 못 잊을 모습…

김일성주석님께서 친히 착공식에 나오시여 첫삽을 뜨신 보통강개수공사장에도 보통녀인들차림으로 매일과 같이 나오시였는데 치마자락을 끈으로 동여올리시고 앞장에서 땀을 흘리시는 그분이 그토록 명성높으신 항일의 녀장군이심을 누구도 알아볼수조차 없었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전설처럼 전해지고있습니다.

이런 순결한 마음, 소박한 모습을 단아한 치마저고리에 고스란히 담으시였으니 어찌 김정숙녀사에게 넋과 마음들이 끌리지 않을수 있었겠습니까.

정녕 김정숙녀사께서 입으신 치마자락은 비록 넓지 않았어도 뜨거운 정과 사랑으로 온 겨레를 끌어안는 애국애족의 크나큰 바다였습니다.

 

 

지금까지 전시간에 이어 주체101(2012)년 12월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였던 류미영선생이 쓴 글 《조선치마저고리에 깃든 녀사의 숭고한 념원을 새겨봅니다》를 계속해서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두번째시간이였습니다.

겨레의 목소리 여기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