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9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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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9(2020)년 7월 4일 《통일의 메아리》
은혜로운 태양의 빛발 영원하리(2)

이 시간에는 전시간에 이어 《은혜로운 태양의 빛발 영원하리》, 이런 제목의 글을 계속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두번째시간입니다.

 

해방직후의 어느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한 할머니를 위해주신 이야기 또한 만사람의 심금을 뜨겁게 울려줍니다.

어느 한 시장에서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부관만 데리고 시장을 돌아보시였습니다. 장군이 많기로 소문난 시장이였지만 파장무렵이여서 사람이 얼마 없었습니다.

싸전, 포목전, 어물전을 비롯하여 시장의 여러곳을 일일이 돌아보시면서 수요와 가격 등 인민생활과 관련된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뜻밖의 일에 접하게 되시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을 미처 알아뵙지 못한 웬 할머니가 수령님앞을 막아나서며 풋당콩을 사달라고 하였던것입니다.

보매 장사라고는 통 해보지 못한 순박한 할머니였습니다. 앞에는 풋당콩이 든 큼직한 자루가 놓여있었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풋당콩꼬투리를 몇개 집어드시고 살펴보시며 값을 물으시였습니다.

할머니는 값을 부르더니 눅게 팔겠으니 어서 사가시라고 하면서 많이 담아서 흘러내리는 풋당콩을 자꾸만 되박우에 덧얹어놓는것이였습니다.

그러는 할머니에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할머니, 풋당콩이 잘 팔리지 않는 모양입니다라고 하시며 한되박 사겠다고 하시였습니다.

할머니옆에는 나어린 처녀애가 오도카니 앉아있었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애에게 눈길을 주시며 손녀인가고, 왜 손녀애까지 데리고나왔는가고 물으시였습니다.

할머니는 한숨을 지으며 말씀올리였습니다.

시장이 무슨 좋은데라고 앨 데리고나오겠수. 치마가 없다고 학교에 못 가겠다 해서 풋당콩을 팔아 해주마 했더니 저렇게 따라나왔수다래. 그런데 풋당콩이 팔려야지요.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못내 안색을 흐리시며 이제 조금만 참으시라고, 나라가 해방되였으니 이제 다 잘살게 된다고 하시였습니다.

저애 치마감이나 하나 끊게 이 풋당콩을 다 사주시우다.

할머니는 경황없이 졸랐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러는 할머니에게 할머니, 이 풋당콩이야 집에서 맛이나 보려고 터밭에 몇평 심었겠는데 내가 다 사가면 집에서는 애들에게 풋당콩맛도 못 보이지 않겠습니까, 나는 한되박만 사겠습니다라고 하시면서 값을 치르시였습니다.

할머니와 헤여지기에 앞서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 돈으로 저애 치마감을 끊으라고, 앞으로는 할머니같으신분들이 애들옷때문에 이렇게 고생하시는 일이 없을것이라고 하시였습니다.

돈을 세여보던 할머니는 그만 굳어졌습니다. 자기가 엄청나게 많은 돈을 받았기때문이였습니다. …

이런 전설같은 이야기는 세상의 어느 위인도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인민모두가 꿈결에도 잊지 못하는 어버이수령님의 인정의 세계는 그처럼 한없이 뜨겁고 다심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옷자락을 찬이슬에 제일 많이 적시시고 비바람, 눈보라를 제일 많이 맞으시며 조국과 인민을 위한 길을 제일 많이 걸으신 인민의 어버이!

어버이수령님의 위대한 한평생은 그 하루하루가 인민에 대한 가장 헌신적인 복무로 수놓아져있습니다.

전후복구건설의 나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는 어버이수령님을 수행하시였습니다.

어느날 밤 현지에 도착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 왜 차창을 열어놓으시는가고 말씀올리시였습니다.

그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는 해방후부터 함흥처럼 화학공장이 많은 도시에 오면 반드시 차문을 열고 시내에 가스냄새가 나지 않는가를 확인해보군 했다고, 지금 흥남비료공장을 비롯해서 화학공장들이 일어서기 시작하는데 시내의 공기가 흐려질가봐 걱정이라고, 인민들이 나쁜 공기를 마시지 않도록 우리는 복구건설과 함께 도시의 공해에 대해 깊은 주의를 돌리면서 미리미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하시였습니다.

복구건설에 앞서 인민들의 건강을 념려하시면서 한밤중에 차창을 열고 시내를 돌아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함흥지구에 대한 현지지도를 마치고 어두운 새벽에 청진에 도착하시였을 때에도 차창을 열어놓으신채 인적없는 시가지를 한바퀴 쭉 도시였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언제인가 신포에 물고기랭동공장을 꾸리였을 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여름옷차림으로 령하 30℃의 극동실안으로 들어가시였습니다. 수행일군들과 현장일군들이 동상을 입으실수 있다고 극력 만류해드리였건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겉구경이나 하고 돌아갈바에야 무엇때문에 백사불구하고 평양에서 여기까지 왔겠는가고 하시며 끝내 극동실안으로 들어가시였습니다.

그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산골사람들에게도 생선을 먹일수 있게 되였다는 기쁨과 랭동공장을 더 좋게 만드실 생각으로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오래도록 극동실을 돌아보시였습니다.

일군들이 어버이수령님앞에서 죄송스러워 고개를 떨굴 때 수령님께서는 오히려 자신께서는 백두산에서 단련되여 일없었지만 동무들이 정말 혼이 났겠다고 하시며 흔연히 웃으시였습니다.

 

 

지금까지 《은혜로운 태양의 빛발 영원하리》, 이런 제목의 글을 전시간에 이어 계속해서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두번째시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