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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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12월 12일 《통일의 메아리》
민족의 얼 (79)

장편실화소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리원주, 리원갑 작 《민족의 얼》, 오늘은 일흔아홉번째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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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 장

3

어제 밤에는 리윤재가 근 일년 반만에 가족, 친척들을 만나 붕 뜬 기분이여서 감옥에서 얻은 병도 씻은듯이 가셔진것 같았는데 하루밤을 감방의 널마루우가 아니라 내 집 자기 방의 따뜻한 온돌우에서 푹신한 이부자리에 누워 지냈는데도 온몸이 안 아픈데가 없이 쑤시고 아팠다. 특히 고질로 되여가는듯 한 허리아픔이 심했다. 감옥살이의 괴로움이 한꺼번에 되살아나는듯 했다.

그의 생활에서 감옥살이는 언제나 심각한 흔적을 남기군 했다. 3. 1인민봉기때 감옥살이의 후과로 얻은 토혈병은 일생의 지병으로 되였다. 그런데 이번 감옥살이에서는 허리병까지 얻었다.

감옥살이는 그의 육체만이 아니라 그의 생활전반을 여지없이 파괴해놓았다.

생활에서 토막을 내여놓는 감옥살이에 의한 공백을 메꿀 길이 없었다. 파괴된 생활을 추세울 겨를도 없이 번번이 당하게 되는 예비검속으로 그의 생활은 끊임없이 란도질을 당했다. 이쯤되니 재산도 없는 그에게서 가난은 거의 숙명적인것이였다.

이제 어떻게 살아갈것인가? 지리멸렬상태에 빠진 가정을 어떻게 수습할것인가? 이런 생각에 그는 누워있어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부엌에서 동자질하는 그릇소리가 들리고 건너방에서 재털이에 대통을 두드리는 소리와 소곤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한번 관심을 돌려본 일도 없는 이 생활의 잡음이 그에게 잃어버렸던 생활을 다시 되찾았음을 일깨워주는것 같았다.

그는 이불을 차고 벌떡 일어났다. 허리가 또 지끈했다. 두손으로 무릎을 짚고 겨우 허리를 편 그는 이부자리를 개여놓고 동저고리바람으로 마당으로 나갔다. 한기에 몸이 오싹했다. 악취가 밴 감방에서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이 시원한 공기를 그는 게걸스럽게 들이켰다. 그는 한손으로 허리를 짚고 엉거주춤해서 마당을 걸어다니다가 화단으로 다가갔다. 키높이 자란 무궁화가 그의 시선을 끌었던것이다. 여름가을없이 줄곧 꽃을 피웠을 무궁화가 한때에는 볼만 했겠는데 찬서리를 맞고 후줄근해진 그 몰골은 보기에도 처량했다. 잎은 거무틱틱하게 시들어서 축 늘어지고 꽃은 몇송이가 가지에 겨우 달려 잔명을 유지할뿐 모조리 떨어져서 땅우에 하얗게 깔렸다. 그는 웅크리고 앉아서 아직도 성한 꽃송이 하나를 쥐고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하얀 꽃잎이 은근한 보라색으로 바뀌여 꽃술을 둘러싸고있는 모습은 꼭 수심을 감춘 깊숙한 눈같다. 그것이 눈물을 머금은듯 축축히 젖어있다.

그가 이 꽃을 사랑하며 이 처량한 꽃을 보고 가슴아파하는것은 이 꽃이 나라와 운명을 같이한 꽃이기때문이다. 끓는 쟁개비처럼 바글거리며 변덕많은 왜놈의 기질을 표현하듯 순간에 피였다가 순간에 져버리는 사꾸라(벗꽃)와는 달리 온 여름, 가을 한결같이 피는 연보라빛의 의젓한 무궁화는 대도대범한 군자의 기품을 보여주는것 같다.

그는 무궁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둘째딸의 이름을 무궁화라고 지었다. 그런데 그가 보통학교에 입학할 때 그 이름이 왜놈교원들속에서 말썽이 되고 딸이 너무도 울고불고 해서 그는 하는수없이 무궁화의 동의어인 근화로 이름을 고쳐주었는데 그후에는 말썽이 없었다. 무식한 귀신은 진언도 모른다고 그는 웃었지만 무궁화라는 이름에조차 신경을 곤두세우는 섬오랑캐의 근성을 미워하는 나머지 이 꽃에 대한 애착이 더욱 깊어졌다.

그러나 나라가 망하고 무궁화도 버림을 받아 이제는 보기 드문 꽃이 되였는데 어떤 뜻있는 사람이 이 뜨락에 심어 알뜰히 가꾸어놓은것이다. 그는 땅바닥에 흩어진 무궁화꽃송이를 하나하나 주어서 소복이 모아놓았다.

《동병상련(어려운 처지를 서로 동정하여 돕는다는 뜻)이구려. 서리맞은 사람이 서리맞은 꽃을 어여삐 여기니, 허허허.》

언제 나왔는지 김한규가 목에 세면수건을 걸치고 빙그레 웃으며 리윤재의 등뒤에 서있다. 리윤재도 따라 웃으며 허리를 폈다.

《화무십일홍(열흘 피는 꽃이 없다.)이란 말도 있지 않소. 그 점에서 인생도 꽃과 다를바없지. 그러니 한풀 꺾인 인생의 가을에는 땅과 사귀고 자연과 벗삼는 이상 없는거요.》하고 김한규가 말을 이었다.

《당장이라도 그럴수만 있다면 작히나 좋겠소.》

《당장 없다면 일간 몸보신을 위해서라도 한번 방이골에 들리러 오구려. 내 밭에서 손수 농사지은 차좁쌀로 조차떡을 치고 나무에 달린채 서리맞은 꿀같은 배맛도 보고 늪에서 천렵을 하는것도 별재미지. 이게 다 몸에 약이 되느니 개든 닭이든 무엇이든 잡아 대접하겠소. 메말라가는 서울에서는 푸짐한 이런 농촌맛은 못 볼거요.》

《내 조차떡맛을 보려 일간 방이골에 가보겠소.》

리윤재는 이 호협한 사나이와 벗을 삼고 농촌에서 여생을 보내고싶은 생각이 간절했으나 아직은 머리를 저었다.

아침을 치르고 김한규내외가 떠나가자 온 집이 텅 빈것 같았다.

하는 일없이 자리에 누워있으니 곧 무료해지고 무위에 시달리던 감옥생활이 되풀이되는것 같다. 신문이라도 있으면 소일삼아 읽어보겠는데 그것조차 끊어버린지 오랜것 같다. 그는 눈으로 서가를 더듬다가 박연암의 《열하일기》를 꺼내들었다. 이것은 그가 가장 사랑하는 책의 하나다.

연암 박지원은 일생동안 뛰여난 글을 방대하게 썼건만 생존시에는 문집 한권 발간하지 못했다. 사대주의로 썩어빠진 유학자들을 신랄히 규탄한 그의 글들은 조정의 봉건사대부들에 의하여 배격을 받고 금지서적으로 되여있었기때문이다. 그의 손자 박규수가 우의정이라는 정승벼슬을 하면서도 조부의 문집을 감히 발간하지 못했고 유고는 자손의 서고속에 묻혀있었다. 그러던것이 박연암의 사망후 약 백년후인 1900년에 한학자 김택영에 의하여 《연암선집》이 간행되여 그의 저작이 일부나마 비로소 해빛을 보게 되였다. 그후 1911년에 광문회에서 《열하일기》를 단행본으로 출판했는데 이것이 바로 리윤재가 가지고있는 책이다.

《열하일기》는 정조 4년(1780년)에 박연암이 청국에 사신의 수원으로서 베이징으로, 건륭의 피서가 있는 열하로 4개월간에 만리에 가까운 려행을 하고 보고 느낀것을 일기, 기행문형식으로 쓴 26권에 달하는 대작이다. 그러니 집대성한 백과전서적인 저술이다.

리윤재가 《열하일기》를 특히 좋아한것은 당시의 량반통치자들과 고루한 유학자들의 비굴한 사대주의에 대한 박연암의 신랄한 폭로비판과 《남이 열가지를 배우면 우리는 백가지를 배워 먼저 우리 나라 인민들에게 리익을 주어야 한다.》고 그 책에서 실사구시의 정신을 강렬하게 느꼈기때문이다.

반세기도 안되는 사이에 임진왜란, 병자호란과 같은 외적에 의한 큰 란리를 두번이나 치러 황페화된 경제를 회복할 사이도 없어 국력은 피페해지고 민생은 도탄에 빠졌을 때 이에는 아랑곳없이 무능부패한 량반통치자들과 주자학을 떠받드는 유학자들은 례론(효종과 효종왕비가 죽었을 때 조대비가 어떤 복을 입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발단으로 일어난 싸움)으로 당쟁을 벌리고 사칠론쟁(인간의 심리현상인 4단과 7정에서 리가 주인가, 기가 주인가 하는 비현실적인 론쟁)으로 공리공담만 일삼았다.

이런 현실에서 실사구시의 안목으로 력사를 바로 보고 고증하며 그에 비추어 자신을 반성하며 선진문명을 받아들이자는 학풍이 일어났으니 이것이 곧 실학사상이였다. 실학은 이미 인식적인 의의도, 현실적인 가치도 없는 공리공담, 언어유희로 전락된 주자학을 사회발전을 저애하는 질곡으로 비판하고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분야에 걸쳐 나라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연구하고 그 모순을 해결하여 인생을 도탄에서 구원하고 나라의 부강발전을 도모하려 했던것이다.

리윤재가 알고있는 한 실학의 학풍을 국어학에 구현한 대표적인 인물은 려암 신경준(1712―1781)이였다. 그가 저술한 《훈민정음운해》는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 16세기-17세기의 공백기를 거쳐 300여년만에 처음으로 나온 학술적인 저작이다. 한문이 판을 치는 조선봉건사회에서 훈민정음의 문자와 어음의 원리를 려암이 학문으로서 연구했다는 그자체가 벌써 실사구시적인 자기반성이고 자아발견이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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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장편실화소설 《민족의 얼》을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일흔아홉번째시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