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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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0(2021)년 4월 19일 《통일의 메아리》
력사의 진실로 일본의 과거사부정책동을 단죄한다(1)

이 시간부터 3회분에 걸쳐 《력사의 진실로 일본의 과거사부정책동을 단죄한다》, 이런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첫번째분입니다.

 

해묵은 이끼를 벗겨낼수 있어도 천연바위는 어쩌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일본이 과거사부정책동에 매달린다고 해서 조선민족의 피맺힌 력사가 백지화되는것은 결코 아닌것입니다.

여기에 세상사람들속에 널리 알려져있는 한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1944년 중국 전서지역에서의 송산전역과정에 한 취재보도반이 찍은 《임신한 성노예》라는 제목으로 된 사진입니다. 사진에 있는 4명의 녀성은 일본군성노예로 끌려온 조선녀성들입니다. 특히 사진에서 괴로운 표정을 지은, 고통스럽게 큰 배를 내밀고 가까스로 서있는 성노예피해자의 모습은 일본군성노예제도의 실체를 여실히 폭로하고있습니다.

그러면 괴롭게 기대고 서있는 그는 과연 누구인가 하는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 반세기가 지난 후인 2000년 8월 일본민간단체인 《전쟁과 녀성들에 대한 폭력반대-일본련맹》은 민간이 주최하는 《세기의 대심판》준비를 위한 조사를 진행하던중 조선의 평양에서 임신한 성노예사진의 주인공인 조선녀성 박영심을 찾게 되였습니다.

박영심로인은 1921년 12월 15일 조선의 남포시 후포리에서 태여났습니다. 집이 매우 가난하여 그의 어린시절은 늘 불행하였습니다.

1938년 여름 《로동자를 모집한다.》는 일본군경들의 꾀임수에 걸려든 그는 10대의 어린 나이에 숨막히는 화물렬차에 실려 중국 남경의 리제항으로 끌려갔습니다.

당시 일본군은 1930년대부터 《성병예방》을 구실로 군대관할하의 《위안소》설치를 조직적으로 확대하고있었습니다. 이런 력사적배경하에 나온것이 리제항 《위안소》였던것입니다.

박영심로인의 괴로운 기억속에는 자기가 들어있던 《위안소》의 방이 19호실이였다는것과 매일과 같이 일본군 16사단의 병사들한테서 수치와 고욕을 당해야 했던 쓰라린 과거가 생생히 남아있었습니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폭발하자 박영심은 조선인성노예들과 함께 다시 남방전선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는 싱가포르 등을 거쳐 먄마북부의 한 도시에 있는 《일각루》라고 부르는 《위안소》에 《배치》되였습니다. 약 1년이 지나 그는 《룡》이라는 대호를 가진 일본군 56사단이 주둔하고있는 중국의 전서요충지로 옮겨갔습니다.

박영심은 100일간에 걸친 치렬한 송산전역에서 다행히도 살아남았습니다. 1944년 9월 박영심은 강제로 끌려가있던 운남성 송산의 성노예피해현장에서 일본군수비대가 완전히 소멸된 후 4명의 성노예와 함께 상대측에 포로되였던것입니다. 박영심이 병원으로 후송되였을 때는 이미 태아가 죽은 뒤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박영심은 조선으로 돌아왔습니다.

반인륜적인 만행으로 생리적기능을 상실당한 박영심로인은 조국으로 돌아온후 1955년에 전재고아인 한 사내아이를 데려다 키웠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도의 악몽은 그에게 일생 가실수 없는 고통을 주었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도의 극심한 피해를 입어 정신육체적으로 쇠잔해진 박영심로인은 전후에 심리적외상으로 인한 정신장애증후군으로 고생하였으며 지어 팔순이 넘어서도 자주 악몽에 시달리며 당시의 공포증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로인은 나이가 들수록 피맺힌 력사를 꼭 증언하고싶었습니다.

그는 력사적진실을 발굴하는 조사단성원들속에 합류되여 60여년전의 악몽이 시작된 남경으로 결연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박영심로인은 출발에 앞서 《나는 죽더라도 내가 바로 일본놈들에게 유린당한 성노예라는것을 증명하고 내가 갇혀있던 저주로운 〈위안소〉를 확인할것이다. 그리하여 일본당국으로 하여금 지난날의 죄악을 똑똑히 밝히고 사죄배상하도록 할것이다.》고 격한 어조로 말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력사의 진실로 일본의 과거사부정책동을 단죄한다》, 이런 제목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첫번째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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