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8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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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 《통일의 메아리》방송은 단파 5 905KHz, 3 970KHz, 3 945KHz와 초단파 97.8MHz, 97MHz, 89.4MHz로 보내드리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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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0(2021)년 1월 4일 《통일의 메아리》
주에 한번씩 《체포》되다

절세의 위인들의 따뜻한 품속에서 영생의 언덕에 올라 값높은 삶을 누려가는 사람들속에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품, 조국의 품에 안겨 인생의 극적전환을 맞이한 전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였던 류미영선생도 있습니다.

사랑과 정이 메마른 거치른 광야에서 헤매이다 태양의 품에 안겨 행복의 최절정에서 인생말년을 보낸 류미영선생은 인간을 제일 귀중히 여기는 사회주의조국이야말로 천도교에서 말하는 《지상천국》임을 페부로 절감하였으며 그 나날 공화국에서 보고듣고 느낀 사실들에 대하여 많은 글을 남겼습니다,

그럼 이 시간에는 그가 지난 시기 썼던 글들중에서 그 일부를 추려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주에 한번씩 <체포>되다》

 

《...

금년(2001년)에 제 나이 여든살입니다. 늙고 병들었던 이 몸이 지금까지 살아있는것은 다 우리 주석님과 령도자님 덕분입니다.

제가 주인과 함께 처음으로 공화국을 다녀온 이후 아메리카지역에서 살고있는 해외교포 2세, 3세들에게 조국의 참모습을 그대로 알려주기 위해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이르러 저의 건강이 급격히 쇠약해지는것이 큰 걱정이였습니다.

사실말이지 이미전에 제 몸에 암성질환이 나타나 여러모로 치료대책을 세워보았으나 차도가 보이지 않아 늘 근심속에 지내오던 저였습니다.

먹은 나이는 속이지 못한다고 제 나이 예순세살 잡히던 해인 주체73(1984)년 3월에 들어서면서 글쎄 제 병세가 또다시 도지기 시작하는것이였습니다.

병이 점점 악화되다보니 나중에는 몸져 눕게 되였는데 운신하기조차 힘들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때 어떻게 해서나 병을 털어버리고 일어서야 하겠다는 생각보다도 이제는 다 살았다는 생각이 앞서 어찌나 서글펐는지 모릅니다.

내 인생에 생의 애착을 그때처럼 강렬하게 느껴본적은 아마 없었을것입니다.

뉴욕에 있는 한 안면있는 교포의사에게 문의해보았더니 하루빨리 큰 병원 이름있는 의사에게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것이였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종양수술을 한번 받자면 적어도 몇만US$ 실히 들여야 한다는것이였습니다.

병원수속비만도 1 000US$, 입원침대값이 150US$, 더구나 어려운 수술비 같은것은 부르는것이 값이라는것이였습니다. 그러니 그 많은 량의 돈도 문제이거니와 더구나 병을 확고히 고칠수 있다는 담보마저 없었으니 이제는 영낙없이 죽었다는 생각으로 더럭 겁이 났습니다. 그때 설상가상으로 주인마저 집에 없는 때여서 하는수없이 모진 아픔을 무릅쓰고 나 혼자서 보험소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보험소에서는 당치않은 구실을 붙이며 돈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이젠 생사를 제 운명에 맡길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변통을 못하고 걱정만하고 앉아있는데 공화국에서 빨리 조국에 와서 치료를 받으라는 기별이 왔습니다.

후에 안 일이지만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저희들도 모르게 제 치료대책을 세워주신것이였습니다.

참으로 가슴뜨거운 구원의 손길이였습니다.

그래서 저희 량주는 부랴부랴 려장을 꾸려가지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우리 내외가 평양비행장에 도착하니 미리 비행장에 나와 대기하고있던 의사선생들이 저를 중앙의 어느 한 병원으로 곧장 후송하는것이였습니다.

그때 저는 병원에 입원하였으니 한시름 놓이기는 하였으나 한편 어떤 진단결과가 내려질는지, 또 고칠수는 있겠는지 우려되여 마음이 초조해났습니다. 그런데 병원의사들이 하는 말이 수술만 하면 얼마든지 고칠수 있는 병이니 마음을 푹 놓으라고 하였습니다.

알고보니 제가 입원한 병원의료진으로 말하면 공화국에서 의술이 높고 치료경험이 풍부한 박사, 교수들로 꾸려진 위력한 의료집단이였습니다.

외국인들까지도 이 병원을 가리켜 <명원>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는것이였습니다.

그로부터 며칠후 조국건설에 벽돌 한장 쌓아놓은 일 없고 나라의 재부를 늘이는데 품 하나 보탠일 없는 이 늙은이는 돈 한푼 들이지 않고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주체75(1986)년 제가 또다시 조국을 방문하였을 때 어버이주석님께서는 제가 조국에 또 왔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친히 저를 곁으로 부르시였습니다.

저는 우리 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비행기를 타고 단숨에 어버이수령님께서 계신 곳으로 갔습니다.

이날에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몸소 정원에까지 나오시여 저를 반갑게 맞아주시면서 저의 건강상태에 대하여 자상히 물으시는것이였습니다.

그러시고는 지금같은 건강상태를 가지고 해외에서 사는것이 걱정스러우니 조국에 와서 함께 사는것이 어떤가고 저희들 일신상의 문제를 의논해주시였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그분들께서는 제가 조국에 영주한 때부터는 늘 의사들의 <감시>속에서 살게 해주시였습니다.

어느해인가 개천절을 맞으며 단군릉에서 진행한 단군제에 참가했던 나는 카나다와 미국에서 살고있는 교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들이 내 나이를 물어보기에 올해 75살이라고 했더니 10년은 더 젊어보인다고 하면서도 제 말을 곧이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마음고생이 많았을테니 육체도 그만큼 따라 늙기 마련이라는 생각에서였지요.

그래서 나는 우리 나라는 다른것은 다 좋은데 <강제>가 한가지 있어서 좀 <괴롭>다고 했더니 모두가 정색해서 제 말에 귀를 기울이는것이였습니다.

<여러분들이 보다싶이 나는 나이에 비해 젊고 건강한데도 한주일에 한번씩 병원에 체포되여 가서 검진을 받아야 한단 말입니다.>라고 했더니 긴장해 제 이야기를 귀담아 듣던 그들모두가 박장을 치며 웃어대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사실입니다.

조국에서는 유능한 중앙병원에 저를 데려다 등록해놓고는 한주일에 한번씩 무조건 검진을 받게 하고있습니다.

그것으로 그치는것이 아니라 한번에 3개월분의 보약을 주고는 꼭꼭 제정된 시간에 보약을 먹도록 요구합니다. 그 <강제>의 덕에 나이로 보면 다 산 늙은이지만 혈압도 내장기능도 모두 정상입니다.

지금 저는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위원장 직분을 맡아보면서 제 건강에 알맞게 오전만 일하고는 오후에는 전적으로 건강관리를 하고있습니다.

참으로 팔갑나이에 이른 내가 이처럼 건강하여 사회정치활동을 할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덕분입니다.

그러할진대 저의 생은 비록 부모님들이 주었지만 제 생을 지켜주시고 끝까지 돌봐주시는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은 참으로 죽어서도 잊지 못할 생의 은인들이십니다.

...》

 

지금까지 공화국의 품에 안겨 인생말년에 행복의 최절정에서 여생을 보낸 전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였던 류미영선생이 쓴 글들중에서 그 일부를 추려서 보내드렸습니다.

감 상 글 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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